한국, ‘꿈의 선박’ 크루즈선에 도전하다

2007-10-10l 조회수 10490
삼성중공업이 지난달 23일 노르웨이 스테나사부터 크루즈선 전 단계인 3만1000톤급 여객선 2척을 수주하면서 오는 2010년 크루즈선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8월23일자 보도〉 크루즈선 사업은 조선업계에서 난공불락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한국은 과연 3년 안에 유럽 아성을 뚫고 크루즈선 건조에 뛰어들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전 세계 선박 수주량 1위 국가라는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최고 부가가치선인 크루즈선 건조에는 유럽의 견제로 발도 못 붙여 왔다. 반면 지난해부터 중국이 세계 선박 수주량 2위로 부상하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자칫 유럽과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내 조선사 ‘빅3’로 통하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크루즈선 제조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점은 2010년이다. 우리 기술력이 유럽을 따라잡고 중국이 우리의 현재 기술력을 따라잡을 시점을 계산한 것이다. 조선업계는 올 상반기 총 322억 달러를 수주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동기에 비해 51% 증가한 것이다. 상반기 선박 수주량은 총 364척으로 1132만 CGT(표준 화물선 환산톤수)의 선박을 수주했다. 세계 시장의 LNG(액화천연가스)선 전량(19척)을 싹쓸이한 것을 비롯 컨테이너선 121척, 석유제품선 77척, 벌크(건화물)선 55척, 유조선 34척을 수주했다. 크루즈선을 제외하고는 선박의 전종을 수주한 것과 다름없다. ‘꿈의 선박’으로 불리는 크루즈선은 조선사가 최후의 목표로 삼은 것이다. 크루즈선은 3000명 이상이 승선하는 초대형 유람선으로 바다 위 호텔로 불린다. 배 안에 객실과 식당, 나이트클럽, 수영장, 카지노, 실내골프장과 아이스링크, 극장, 테니스장까지 지상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다. 호텔, 리조트 시설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선박건조 기술을 넘어선 첨단 고부가 가치선으로 인식하고 있다. 호텔급 부대시설을 갖춰야 하는 특수성 때문에 주변 산업에 대한 파급 효과도 높을 수 밖에 없다. 대당 가격도 5억~10억달러 수준. 우리 조선업계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대형 컨테이너선(1만 TEU급·1억2000만 달러)과 LNG선(2억4000만달러) 보다 5배 이상 비싸다. 하지만 전 세계 크루즈선 시장은 유럽업체들이 독식하고 있다. 이중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핀란드 크베너, 독일 마이어베르프트, 프랑스 아틀란틱 등 4개 회사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한국 선박회사의 진입장벽은 높은 편이다. 한국은 지난 1960년대 1만톤급 벌크선 건조를 시작으로 1970년대 30만톤급 유조선, 1980년대 반잠수식 시추선 1990년대 LNG선과 석유 시추선, 2005년 1만 TEU(컨테이너 세는 단위)급 컨테이너선을 수주하면서 세계 시장을 장악해 왔다. LNG선, 유조선 등 상선분야에서 부동의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10만톤급 이상의 크루즈선 시장에는 아직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유럽 조선사들은 한국이 건조한 LNG선과 대형컨테이너선, 여객선의 기술력을 보고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전 미국 뉴올리언즈주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가스 공급시설이 파괴됐을 때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LNG선이 부두에 정박 중이었는데 아무 피해를 입지 않고 오히려 액화가스를 기화시켜 가스를 도시에 공급하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는 것이다. 지난 2000년에는 삼성중공업이 그리스에 여객선을 인도하자 현장에 나온 선주가 “정말 대단한 배”라고 경탄을 했고, 이를 계기로 유럽연합(EU)은 한국과의 조선분쟁을 더욱 강화했다는 것이다. EU측은 ‘한국 조선업계에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아 저가 수주에 나선다’며 트집을 잡기도 했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최항순 교수는 “우리나라가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세계 선박 수주 1위를 유지하려면 크루즈선 건조에 나설 수 밖에 없다”며 “하지만 유럽이 지난 10년 전부터 한국의 진출을 견제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크루즈선 개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회사는 삼성중공업. 지난 1999년부터 카니발사 등 세계 3대 크루즈 선사가 운영하는 호화 크루즈선에 경영진과 기술인력 등을 승선시켜 조사·연구 활동을 벌이면서 중대형 크루즈선의 선형 개발과 핵심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은 지난 2000년부터 그리스와 네덜란드 스웨덴으로부터 크루즈선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3만5000톤급 대형 여객선을 수주받고 인도한 바 있다. 지난해 전 세계 크루즈 여행객의 숫자는 1390만명으로 전년에 비해 8.6% 증가했다. 이와 더불어 크루즈선 발주도 늘어나고 있다. 2005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12척의 크루즈선(70억달러)이 발주됐고, 지난해에는 16척(100억달러)이 발주돼 세계 조선시장 발주액의 9%를 차지했다. 해마다 5% 이상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크루즈선이 고부가 가치선임에는 틀림없지만 선주의 주문 요구가 워낙 까다로운데다 선주가 원하는 실내장식 자재들이 유럽산들이어서 한국에서 제조할 경우 물류비용을 감당하기 벅차다는 진단도 있다. 2000년 초반에 미쯔비시중공업이 크루즈선 건조에 야심차게 도전했다가 중도 포기한 것도 우리가 잘 살펴봐야 할 대목이라고 지적한다.
* 출처 : 조선일보 2007.8.31